이병산 칼럼세상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서울 한 자치구청 선거담당 공무원 A씨는 최근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설명을 반복한다. "관리관 도장이 인쇄된 사전투표용지는 합법이고, 규정에 따른 정상적인 절차입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민원인들은 한 시간 넘게 언성을 높이고, 때로는 협박성 요구까지 한다. 선거는 가까워지고, 민원은 폭주한다. 선거 행정이 마비되는 지경이다.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은 이른바 '부정선거 민원'이라는 새로운 악성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민원 빅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부정선거를 키워드로 포함한 민원은 무려 1만9310건에 달했다. 작년 총선 1년치(8905건)의 두 배를 넘는다. "관리관 도장을 현장에서 찍어라", "..
이병산 칼럼세상 스물네 번째 이야기 차기 대통령 선거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 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破棄還送) 결정을 내리면서, 사법부가 스스로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대법원은 1일 이 후보의 '허위사실 공표' 사건에 대해 항소심의 무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되돌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기획 재판 혹은 사법부의 대선 개입이라며 격하게 반발했고, 한동훈 전 총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사퇴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대법 판결이 떨어진 정황에 대해 짜여진 각본이라는 의혹까지도 제기했다. 박찬대 총괄선대위원장은 차기 대선 유력 후보에게 올가미를 씌우고 족쇄를 채우려는 불순한 시도라며, 이는 민주..
이병산 칼럼세상 스물세 번째 이야기 대한민국 헌정사에 또 한 번 비극적 장면이 기록됐다. 현직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시도에 이어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며 윤석열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국민의힘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 외려 책임 회피와 내부 권력 다툼에 몰두한 모습만 연일 보여주고 있다. 정권이 무너지고, 대통령이 파면되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도 국민의힘은 집단적 반성이나 성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국민 앞에 머리 숙이고 “잘못했다”고 고백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당은 오히려 “정치적 탄핵”이라며 사법부의 결정을 공격하고,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는 듯한 언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탄핵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심의와, 헌..
이병산 칼럼세상 스물두 번째 이야기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6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미 영덕 해안까지 불길이 닿았고, 인명 피해는 23명 사망에 달했다. 여의도 면적의 100배가 넘는 산림이 불탔고, 수천 가구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정부는 특별재난지역 선포, 대규모 진화 자원 투입 등 총력 대응을 외쳤지만, 현장은 여전히 불길과 연기, 잿더미뿐이다. 이번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다. 이미 예견된 재난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봄철 건조기, 기후변화에 따른 강풍, 고령화된 농촌 지역의 방심, 그리고 취약한 초동 대응 체계. 그 모든 약점이 이번 재난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산불의 주된 원인은 성묘객의 부주의로 지목됐지만, 본질은 그 이후의 대응력이다. 초기에 작은 불씨가 되었던 불은 순간 초속 2..
이병산 칼럼세상 스물한 번째 이야기 지난 1월 18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발생한 폭동 사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다. 법원 100m 이내에서의 집회·시위를 금지한 현행법을 무시한 채 시위대는 경찰 통제선을 뚫고 1.5km에 달하는 도로를 점거했다. 이는 단순한 불법 집회 수준을 넘어, 사법부에 대한 조직적인 물리적 공격이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판결에 반발해 법원을 직접 공격하는 시도는 극히 드물었다. 지난 1989년 조선대학교 시위대 사건 이후 35년 만에 벌어진 사법부 점령 사태라는 점에서 그 위법성과 폭력성은 더욱 충격적이다. 더구나 과거 사례들과는 달리, 이번 사건은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폭도들의 행태..
이병산 칼럼세상 스무 번째 이야기 재기를 노린 2024년 갑진년이었지만 결과는 초라함 그 자체였다. 초반에 조금 시작하나 싶었던 회사는 후반기에 거의 식물 상태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몇 달 동안 기사가 올라오지 않은 경우도 있었으며, 그렇게 몇몇 속보를 제외하면 칼럼세상 역시 쥐 죽은 듯 지냈던 한심한 결과물만이 남겨지게 되었다. 사정없이 헤매고 있던 사이 청룡은 넘어가고 푸른 뱀이 똬리를 틀며 본인의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작년의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다사다난 그 자체였다. 초반에 감정의 과다에 다툼이 있었던 푸바오의 중국 반환을 시작으로, 연예계에서는 민희진이 기자회견을 하며 뉴진스의 탈퇴를 요구하는 쌍팔년대 연예계 방식으로 돌아가는 한탄을 자아냈다. 여기에 스포츠는 내부자들의 폭로에 힘입..
이병산 칼럼세상 열아홉 번째 이야기 늘 있었던 일이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내리는 강한 비로 경남을 비롯한 남부 6개 시도에서는 900명이 대피하는 홍수 참사를 겪었다. 앞선 21일 18시를 기약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호우 대처 상황보고에 따르면 현재까지 대피한 인원은 부산을 비롯한 충북, 경북, 경남, 전남 등 6개 시도, 31개 시군구에서 581세대, 903명이라고 한다. 아직도 409세대 중 600여명이 미귀가 상태다. 경북의 경우 10개 시군의 230세대의 392명이 대피하는 등의 절반 이상의 피해를 본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임시주거시설을 비롯한 친인척집과 경로당, 마을회관, 민간 숙박시설인 모텔 등지에서 머물고 있다. 이번 호우로 공공시설 및 침수피..
이병산 칼럼세상 열여덟 번째 이야기 충격이다. 장희지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는 동물은 오락의 도구가 아니다,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축제를 위해 화천 산천어 축제가 동물 학대 프로그램을 즉각 중단하고 생태적 축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산천어 축제는 강원도 화천군의 대표적인 지역축제다. 지난 2011년 미국 CNN이 발행하는 세계적 여행잡지 론리 플래닛을 통해 겨울철 7대 불가사의로 소개되면서 해외에서도 유명해진 부분이다. 2003년 시작된 이 행사는 2006년부터 매년 100만 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성공적인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반대를 할 뿐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14일 한국채식연합 관계자들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모..
이병산 칼럼세상 열일곱 번째 이야기 육십 간지의 41번째 해인 갑진년(甲辰年)이 밝았다. 갑은 청을 뜻하기에 올해를 청룡의 해라 일컫는 것이다. 서력 연도를 60으로 나눈다면 나머지가 44인 해가 올해에 해당된다. 이미 미디어에서는 갑진년이라는 워딩으로 '값진년'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내놓기 시작하는데 뭐 요즘처럼 진지함을 싫어하는 세대에는 이마저도 감사한 일이다. 사실 중정일보의 작년, 2023년은 황폐하기 그지 없었다. 본사는 재정 적자의 극한에 치닫고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버렸다. 결국 집필 활동을 미룬 채 다른 사업에 정신이 팔려 중정 미디어 자체를 등한시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아마도 작년이 초기 병산미디어에서 청성일보로 넘어가고 다시금 중정일보로 바뀐 이래 최악의 상황이자 글이 가물었던 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