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경북 산불, 끝없이 타들어가는 산과 삶
- 오피니언 / 이병산의 칼럼세상
- 2025. 3. 30. 12:06
이병산 칼럼세상 스물두 번째 이야기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6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미 영덕 해안까지 불길이 닿았고, 인명 피해는 23명 사망에 달했다. 여의도 면적의 100배가 넘는 산림이 불탔고, 수천 가구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정부는 특별재난지역 선포, 대규모 진화 자원 투입 등 총력 대응을 외쳤지만, 현장은 여전히 불길과 연기, 잿더미뿐이다.
이번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다. 이미 예견된 재난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봄철 건조기, 기후변화에 따른 강풍, 고령화된 농촌 지역의 방심, 그리고 취약한 초동 대응 체계. 그 모든 약점이 이번 재난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산불의 주된 원인은 성묘객의 부주의로 지목됐지만, 본질은 그 이후의 대응력이다. 초기에 작은 불씨가 되었던 불은 순간 초속 27m의 강풍을 타고 산맥을 넘어갔고, 진화 헬기와 장비는 바람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현장에서 숨진 진화대원과 공무원들, 기꺼이 위험에 뛰어든 이들의 희생이 무겁게 느껴진다.
산림청은 과거 산불에 대한 대응 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자부해왔고, 정부는 매뉴얼에 따라 문제없이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이 보고 있는 현실은 다르다. 불이 번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대피소에 모여 있는 이재민들은 차가운 바닥 위에서 밤을 지새운다.
재난은 자연의 영역일지언정, 피해의 크기는 결국 정부와 사회의 대응 역량에 달려 있다. 이쯤 되면 단순한 불이 아니라 시스템의 붕괴다. 국가 재난 대응 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지역의 소방력과 산림 진화 인프라를 중앙이 적극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대응한 산불 감시 체계, 인공지능 분석 기술 도입, 고성능 진화장비 확보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재난 현장에서 헌신하는 이들에 대한 예우다. 생명을 걸고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진화대원들, 밤샘으로 현장을 지키는 공무원들에 대한 지원과 보상체계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들이 지키는 것이 단지 산이 아니라, 이 나라의 마지막 생명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북 산불은 단순한 지방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가 겪는 국가 재난이다. 더 이상 무력하게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 국민 모두가 이 산불을 기점으로 재난 대응 시스템을 다시 짜야 한다. ‘다음에는 막을 수 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대책은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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